백선엽 장군 별세
2020년 7월 10일
한국군 최초 대장을 지낸
백선엽 장군이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전역 이후 외교관과 장관 등으로 활동했고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아 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을 얻었다.
이에 사회 각계각층의 애도가
이어지며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의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도
별세한 백선엽 장군에 대해
"진심으로 그리울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며 애도했다.
백선엽 장군 논란
계속되는 애도와는 다르게
백선엽 장군의 행보에 대한
논란 또한 이어지고 있다.
백선엽 장군은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지냈다.
1939년 3월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직에 종사했지만,
1941년 12월 군인의 길을 걷게 된다.
만주의 봉천군관학교에 진학하여
자무쓰 부대에 배속된다.
1943년에는 간도특설대로
배치되어 활약한다.
논란이 되는 부분이 이 간도특설대다.
만주군 간도특설대는 만주에서 활약하던
동북항일연군 및 팔로군 소속
게릴라 부대를 주로 상대하며
잔인한 토벌작전을 벌여 악명이 높았다.
그리고 1983년 일본에서 출간된
게릴라 토벌 전술
<대게릴라전 - 미국은 왜 졌는가?>에서
백선엽은 자신의 경험을 적었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빠져든 형국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하여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며,
우리가 배반하고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어찌되었던 간에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간도특설대에서는 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기분을 가지고 토벌에 임했다.
『対ゲリラ戦―アメリカはなぜ負けたか』.
原書房.
한편, 시기 상으로 백선엽 장군이
배치 되었을 쯤 독립운동가들은
이미 대부분 소련 연해주로 망명하여
소련군에 배속되어서,
실제 독립운동가를
맞상대할 일이 없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여러 자료에 나온 간도특설대 활동 내역을
토대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백선엽 장군은 간도특설대의 경력을
시인하고 부끄럽다 정도의 언급은 했으나
사죄를 한 적은 없다.
자신은 철저한 기회주의자이며
그 시대 그 상황에
가장 득이 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영웅 백선엽
백선엽은 만주군 중위를 지내다가
해방 직후 평양으로 돌아왔고,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일하다가
1945년 12월 월남했다.
1950년 4월 22일 38선의 경비를
담당하는 제1사단장으로 근무하던
백선엽 대령은 전쟁 발발 당시
서울에 있다가 부관의 연락을 받고서
전쟁을 인지했다.
전쟁 발발 1개월만에 북한군은
남하하여 5주만에
낙동간 유역까지 도달했다.
백선엽의 국군 1사단은
칠곡을 중심으로
그 경계의 방어를 담당했는데,
8월 한달에 걸쳐 칠곡 인근의
낙동강 전선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를 다부동 전투라고 하며,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손꼽힌다.
북한의 총공세에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을 때
488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이 전투에서 백선엽은 선봉에 서서
적진으로 돌격했는데,
돌격직전 병사들에게 한 말이 전해져온다.
"모두들 내 말을 들어라.
그동안 잘 싸워줘서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후퇴할 장소가 없다.
더 밀리면 곧 망국이다.
우리가 갈 곳은 바다밖에 없다.
저 미군을 보라.
미군은 우리를 믿고 싸우는데
우리가 후퇴하다니 무슨 꼴이냐.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이후 수 많은 전공으로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되었는데,
그의 나이 불과 33세였다.
6.25전쟁 기간동안 수많은 활약 가운데
큰 실수를 일으키지 않았고,
미군과의 관계도 원만히 유지했다.
덕분에 한국군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미군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한국군이 자립의 기반을 닦게 된다.
대한민국을 지켰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장본인이지만
과거 깨끗하지 못한 친일 행동과 더불어
박정희를 도와준 경력도 있다.
선과 악의 얼굴
모두를 지닌 백선엽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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